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버트 E. 리 (문단 편집) == 기타 == * 리와 부인인 메어리 커스티스는 워싱턴 근교에 농장을 갖고 있었는데, 남북전쟁이 발발할 무렵 농장을 남겨두고 남부로 떠나게 되었다. 남북전쟁 당시 리의 남군에 의해 북군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연방 정부의 육군 병참감이었던 메이그스 장군이 열받아 리의 농장에 전사자들을 매장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의 [[알링턴 국립묘지]]이다. 그리고 그 농장에 있던 집이 알링턴 하우스(Arlington House)라고 불리는 기념관이 되었다. 참고로 이 토지와 메어리 커스티스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과 살짝 연결되어 있다. 메어리 커스티스는 조지 워싱턴의 의붓 아들[* 조지 워싱턴에게 친자녀는 없고, 아내인 마사 워싱턴이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만 있었다.]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이다. [[파일:external/media-2.web.britannica.com/91475-050-E4A94473.jpg]] [youtube(GhX6a18xSQw)] 애포머톡스에서 항복하는 리. * 북군 사령관 그랜트 장군이 주정이나 부리다가 군대에서 쫓겨나고 매일 옷도 허름하게 입고 다니던 나사빠진 사람이었던 반면 리는 굉장한 신사였고 절도가 있었다. 사실 두 사람은 [[미국-멕시코 전쟁]] 때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랜트는 그때의 기억을 평생 잊지 않았지만 리는 그랜트가 하도 추레하게 하고 다녔던 탓에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그랜트의 기억력이 매우 뛰어난 덕도 있었다. [[마크 트웨인]]이 그랜트의 대통령 취임 직후 그를 만난 적이 있는데, 10년 후 그랜트와 트웨인이 재회했을 때 그랜트는 그 잠깐의 만남 동안 오간 대화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트웨인의 자서전에서 나오는 일화다.] 1865년 버지니아 애포머톡스에서 리가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장면을 그린 기록화를 보면 말끔한 차림의 리 장군과 '''신발도 안 닦고 추레한''' 그랜트 장군이 같이 나오는데 옷 매무새를 보면 오히려 그랜트가 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 항복하는 측에서 그나마 남은 자존심이라도 지키기 위해 최대한 옷차림을 단정하고 깔끔하게 하는 경우는 흔하다. 리 본인도 평소 전장에선 프록코트 차림이 대부분이었고 제복을 제대로 입는 것은 항복 때와 같이 아주 드문 경우였다. 반면 그랜트는 성정 탓도 있지만 항복 직전까지 전쟁의 마무리를 위해 업무에 시달리다가 항복 소식을 듣고 급하게 흙먼지를 뚫고 달려온 것이라서 옷차림이 꾀죄죄할 수 밖에 없었다. * 리가 학장직을 수행하고 있을 무렵 그랜트도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리의 살아 생전인 1869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랜트는 취임 후 1년 뒤 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슬퍼했다고 한다. * 윌더니스 전투 당시 때맞춰 전장에 도착한 텍사스 여단을 보고 흥분한 리가 "텍사스인들이 언제나 적을 몰아내주는군"이라고 하자 텍사스 여단의 한 병사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리 장군을 위해서라면 지옥까지라도 돌격해 가겠다"고 외쳤다고 한다. 또한 그가 선봉에서 돌격하려 하자 병사들은 리 장군이 안전한 후방으로 가지 않는다면 돌격하지 않겠다고 거부한 일도 있었다. 훗날 애포머톡스에서 포위당했을 때 부하 장교가 항복을 권유하자 리가 최후까지 싸우지 않으면 국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화를 냈는데, 그 부하 장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조국은 무슨 놈의 조국입니까!(Country be damned!) 조국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몇년간 우리에게 조국은 없었습니다. 당신이 저 불쌍한 병사들의 조국이었으며, 그들은 급료도 피복도 없이 굶주리면서도 오직 당신을 위해 싸웠습니다. '''수천의 병사들이 아직도 당신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jagsjj/70010598603|미국 남북전쟁- 애포머톡스의 종전 9. 4월 7일 - 병사들의 조국]] * 후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그의 이름을 딴 [[M3 리]] [[전차]]가 사용되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M3 전차를 일부 개량한 개량형에는 '''[[율리시스 S. 그랜트|그랜트]]'''의 이름이 붙었다. 이 이름은 영국군이 붙인 것으로, 영국군은 리와 그랜트 양자를 모두 공여받아서 북아프리카에서는 그랜트 중심으로 운용했다. * 2011년 6월 20일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포털 MSN.com에서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 영웅 16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특히 미국 남부에서 그에 대한 추종은 절대적이어서 군신(軍神)을 넘어선 거의 반인반신(半人半神)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패배한 직후 망연자실한 일반 사병들 앞에서 "Friends, it is all my fault. It is entirely my fault(전우들이여,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다)."라며 장엄하게 고백했다. 사실 전적으로 리의 책임은 아니었다. 핑계는 얼마든지 댈 수 있었다. 이 때 이 부대는 이렇게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유얼은 '가능하다면 점령하라'는 지시에 소극적인 지휘로 세메터리 힐을 점령하지 않아 북군이 전열을 정비할 여유를 줘버렸다. 영화 게티즈버그에서도 부하가 이걸로 유얼을 작정하고 까자 리가 진정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가능하면'이라는 애매한 명령부터가 문제라고 봐야한다. 유얼 입장에선 그냥 불가능해 보여서 점령하지 않은 것이니까. 리도 그걸 알고 있기에 자기 책임이라 한 것.] 기병대는 늦게 도착했고[* 기병대장 [[제임스 이월 브라운 스튜어트]](1833~1864)는 복수심에 불탄 나머지 명령대로 안 움직이고 북군 진영을 휘젓고 다녀서 게티즈버그에서의 패배에 일조했다.] 여기서는 이것이 잘못되었고 저기서는 저것이 잘못됐다는 등...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리는 남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았다. 역사에 남은 위인들 중 이 정도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그것도 사병들 앞에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할 정도의 용기와 인품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 p.232, 리베르 출판. 데일 카네기는 이 예화를 예로 들며 인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리 장군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라고 조언한다.] [youtube(63F7uIGDUmo)] 패배를 시인하는 리. 1분 00초부터. * 고향인 [[버지니아 주]]에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서 남북전쟁의 주역인 리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에 항의가 많았고 결국 주에서 철거를 결정했다. 이에 후손인 로버트 W. 리 목사는 철거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리의 어머니 앤 카터 리에게는 상당히 특이한 일화가 존재한다. 당시 강경증[* 기절한 상태에서 전신 근육이 경직되는 증상.]을 앓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병이 발현되면서 쓰러져 버린 것. 당시엔 의학이 그다지 발전한 상황이 아니라 의사들이 사망상태 진단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리의 어머니도 의사의 실수로 죽은 것으로 간주되어 버렸고, 결국 관에 들어가서 장례식까지 치르게 된다. 다행히 완전히 매장되기 전에 리의 어머니는 관 안에서 깨어났고, 교회지기가 관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열어준 덕분에 생매장의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리는 이 사건이 있고나서 1년 후에 태어났다고 한다. * 조지 워싱턴급 핵잠수함에 그의 이름이 붙여진 핵잠수함이 있었다(USS Robert E. Lee(SSBN-601)). * [[PragerU]] 유튜브 채널에서 이 사람을 옹호하는 영상을 올리다가 욕을 쳐먹고 영상이 제한 당한적이 있다. * [[KKK단]]의 초대 회장이었던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를 회장으로 추천한 이가 다름아닌 리였다. 같은 남군의 [[젭 스튜어트]], 북군의 필립 셰리든과 더불어 남북전쟁 시기 최고의 기병대장으로 이름 높았던 그는 막나가는 KKK의 행보에 질려 회장직에서 사임하려 했으나, 자신을 추천한 리의 명성에 피해를 줄까 우려해 결국 훗날 회원들에 의해 제명당할 때까지 회장직을 유지한다. 참고로 포레스트는 본래 노예상인 출신으로, 남북전쟁 시기까지만 해도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으나, KKK에서 제명당한 뒤로는 흑인 민권 운동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 자신의 천막으로 도망친 암탉 한 마리에게 넬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전쟁 기간 동안 애완동물로 삼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